좆도 약사!
조선조 야사에서만 기록된 왕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섹종이!
일부사람들은 그래서... 조선조 왕이름의 순서가...
태정태[섹]문단세 라고 주장한다..
섹종의 종자는 명기와 우유 후궁의 이름은 전희빈
동궁의 이름은 십창대군으로 전해진다
섹종실록 18책에 보면 환상의 섬 "좆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으니... 좆도의 지적위치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로 추종되며 행정구역상으론 경상북도 성기군인지 경상북도 적군인지 그군인지 확실하지않다.. 다만 섹종실록에 따르면 울릉도에선 남정매들이 하나둘씩 슬금슬금 배를타고 좆도 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울릉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이에 울릉도 여성단체인 질경년에서 투종에 상소문을 보네기...이 상소문을 접한 섹종은 영의정 간통대부에 건의에 따라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섹종은! 강간정사와 윤간 부사를 조사 책임자로 보고 강가청에 성고문과 함께 현지에 다다르자
여기부터는 좆도임이라는 표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푯말 뒷부분에는 여기서부터는 좆도 아님 이라고 써있었다!.
팻말 부분에서 기다리는 좆도국 의무부 의전장인 성
치한 조직인 자위대의 우두머리! 포경대장을 이끌고
섹종의 사신을 영접하였었다.. 이들은! 좆도의 배로
갈아탔는데 의전장에 따르면 고대 로마시대의 유명한 조선가인 오나니무스의 기술을 전수받아 만든
마스터베이선이라는 설명이였다.
이들이 도착하자 인파가 이들의 국기인 성기를 들고! 국가인 간청을 부리며! 환영 하였다...길가에는 국화인 존나리가 만발해 있었다.
조사단은 영빈관의 옥문관으로 안내 되자.
좆도의 통치자인 뻑킹이 왕후 조세피나와 후궁 에마뉴엘바기나스의 세자인 석킹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이들이 말한 자신들의 역사는 다음과 같았다.
고려의 마지막왕이던 공민왕과 당대의 충신 정몽정의 딸 사이에 남근태자가 태어났는데.. 그는 고려가멸망하자 추종세력을 이끌고 이곳 좆도로 와서 투호 세력과 연합해 좆도국을 세우고! 초대 공활왕지휘하에 공활왕은 신라의 골품제도에 따서 신분제도를 만들었는데 왕족은 섹군 좆도의 호족세력은 성군 그리고 그 밑에 중간지배층은 귀두크기라 했다.
섹종의 사신 방분 당시 좆도는 사대왕 퍽킹의 치세였는데 그는 공활왕의 사대손으로 제위 10년간 과감한 개혁으로 국제화 세계화를 따내고 자신도 추잡왕에서 퍽킹으로 계명하였고 이러한 개혁 정책은 신년유신으로 명령되었다.
조선의 사신들은 영빈관인 옥문관에서 하룻을 보넨후
다음날 아침 울릉도 남자들의 실종사건을 협의 하기 위해 좆도의 정궁인 자궁으로 향했다.
좆도의 정궁인 자궁은 본전인 사정전과 별궁인 체외사정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신들 얘기로 돌아오기 전에 좆도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보자..자궁에 이르는 큰길 이름은 하는데로 였고 호수위에는 다리 두개가 있었는데 성교와 난교라 불리었다. 이 길의 끝에 있는 숲의 이름은 좆걸림이였고 이 숲에는 좆가지마라는 야생마와 강간범이라는 호랑이도 살고 있었다. 숲에서 나오면 고환이란 화폐를 발명한 초대 공활왕의 능인 발기불능과 요절한 왕자들의 무덤 왕자지묘가 있었다.
대로 변에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따 만든 발딱세움이 있었고 이 경기장 주위를 도는 조금한 하천 꽉끼네였다 이 냇가에는 큰 바위가 두개 있었는데 이름하야! 자궁암과 유방암이였다. 그 냇가에는 가랭이라고 하는 나물이 무수히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좆도에는 복상사와 품외정사란 두개의 큰 사찰이 있었는데 복상사의 주지는 두루할타였고 품외정사는 마구할타라는 스님이 주지였다. 신진대사는 이들이 존경하는 원로스님 이였다. 유명한 기구니도 있었는데. 본명은 사타구니였다!
신흥종교로는 조로아스토교로 교주 교미하라가 이끌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예배시간이 1분 이 내 라는 것이다.
좆도의 명문대학은 꼴리지였고 여자대학은 생리대가제일 명문이였다.
좆도의 학문적 명성은 유명한 철학자인 클리토리스로대변되어진다. 그는 오르가즘이란 철학으로,,훔..성감대 체위학과 출신으로 유명한 가수가된 이 사람이
존 매논 이란 사람인데 공연중 바지를 벚는것으로 유명하였다..또 국민학교 출신으로 유명한 권투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워몬 이었다..일선에 의하면 그는 내개의 남근은 가지고 있설랑은 동시에 내명과의 여자와 상대를 했다고 하며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현제 찾을 수가 없는것으로 알고있다.
좆도는 쌀로 유명했는데 민기 민비 민 미가 제일 많이 제배되는 품종이다.. 농부들은 젖빠지게란 지게로 수확물을 날르고 또 겨울에는 이 볕집으로 새끼를 꼬아서 부소득을 올렸다.
광물로는 비철금속인 히쭈그리와 철광석의 한종류인 변광쇠가 생산되었다.
제 3 빙하기 이후 발전기 지층에서는 유전도 발견되
빼유가 생산 정제 되서 휘발류로 팔렸다
좆도에서 제일 잘팔리는 치약은 칼라치오였다.(?)
좆도의 여인들은 미여 올림에 꿀을 많이 복용했는데
처녀 용어로는 처음허니 유부녀들은 맨날허니를 먹었다.
좆도 사람들은 빵을 많이 먹었는데 제일 유명한 제과점이 빨리빨아상이고 돌림빵이 최고 인기 봉이였다.
이리하야 조선으로 떠나기에 앞서! 사신들은 유명한 해변 선 오브 비치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해변가에는 유람선인 때쉽이 좆도 일출구였다는 것이었다. 이 해안의 앞바다에는 고난이였다.[?]
그러나 사신들의 위국보고서는 배가 중간에 난파 되었기 때문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사람의 구전으로 전하여지고있음이 있으니..
통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