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장미가 있는 연가 김승희
사랑하는 사람이
한치 피부아래 그대 아픔을 내가 알지 못하니
사랑이란 어디에 슬데 있으랴
병마와 혼로 힘이들어
우리에 지붕위에 해골들에
춤이 바싹 거리고 오는가
이렇게 얼굴을 가지고
돌아서 우는 사랑의
야윈 어깨가 부끄러워라
달빛 묻은 꽃잎만 홀로 입술 달삭여 길게 노래하니
오
밤이면 천지 아득한 수마가 있을 뿐
사랑하는 사람아
불붙은 도화산처럼 타들어가면서
두손을 내뿜는
나의 가난함이 부끄러워라
방아쇠가 벌써 당겨진 시한의 폭약처럼 누군들 이제
시간은 없으려니 가는가
이렇게 흐드기는 목숨의 파편들을
한줌 열열히 움켜서 남은 자여
목을 놓아 풍선처럼 조용히 터지는 어느 태양의 혈통 속에
고이 나를 묻어다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의 방에는 거울이 많고
거울 속으로는 언제나 꽃잎같은
살별이 지고 있었지
꼬리를 끌고 떨어지는 별들은 낙화암,
낙화암으로 가는 피묻은 상처안의 목숨의 꿈
스스로 꽃이 되고자 별같은 목숨들이 있어
조용히 으스러지리리라 조용히
오래된 검은 장미만이 일어서 무궁히 바다를 다스리니
오 매일 나누는 밥 그릇에
무심한 정다움이 참혹하여라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