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한 시 반 십분 전이면
귓가에 스치는 그 빛 바랜 종이 넘김
글자만큼 오래된 무수한 별이
밋밋한 하늘에 하얗게 소금 쳐진
밝은 이 밤 잠이 드시기 전 새어
나오는 얇은 방의 빛과 방 구석엔
아문 곳들을 잠근 시간
몰래 열어보곤 해 가끔씩 난
감정이 기억나지 않는
몇 번의 춥고 더움
울고 웃던 것보다 더 생생한 무표정
아마 부모님보다
남들의 눈을 탔기에
내 의지와 달랐던 자아 순종적
그런 무표정의 가뭄 속에서
두 눈을 채웠던
촉촉하게 걷던 그 때를 향해
빠르게 풀리는
안방의 태엽
젊은 나무 시기 늦었던 붉은 잎새여
그 땐 길었지
쉴새 없이 쏟아진
3년 동안의 장마 비 역시
막아줄 우산을 잃어버렸기에
그 때 유독 낮았던 눈물의 역치
엄마의 방주에서부터 쥐어진
그 우산 영원의 항로를
잃어버린 순간
누가 이 아이의 등대가 되어 줄까
빤히 보이는 풍랑을 향한 출항
왜 아무도 내 편이 없어 외쳐도
등을 돌리는 것처럼 보여
잡아줘 날 위해 저 신기루를
닦아줘 이 외로움의 그을음을
다시 돌아간다면 피해
속으로 말했어
엄마 채색되지 못한 흑백 가을에서
은빛 칼도 잘라내지 못한
마음의 탯줄로
전달된 나의 먹구름 아래서
말을 계속해 마치기도 전에 엄만
큰 우산을 건네
내가 언젠가 잃어버렸던
은혜를 원수로 덮은 모든
먹구름을 지운 용서의 편애
각 져 있었던
내 뻣뻣한 몸을 끌어 안고
이제 내 머리 위에서 젖어
오랜 시간 버텨온 깊었던
내 마음 심해의 검은 잡음이 씻겨져
그렇게 떨어진 붉은 낙엽 추워진
몸을 감싸는 굵은 한 겹
부는 한겨울의 바람에도
이제는 따스해
날 덮고 있는 우산이 너무도 큰 탓에
마음에 우산을 씌우지 못하던 때여
그댄 젖은 땅처럼 내게 거울이 되어
나뉘어진 시간 내 인생의 분계역
현재가 벅차올라 목대신 눈이 메여
깨어진 내 숫자들의 조합 합해보니
되는 달력은 바로 내 코앞
기쁨과 슬픔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
바로 지금까지 이르게 된
따뜻한 조화
그 때 엄마가 내게 살며시 붙여놔
지금 도착한 하늘이 가득 찬 우편함
하나씩 아침에 꺼낼 때마다
다시 끓어오르는 감격
눈 깜빡이는 잠깐 사이 꺼낼
다음 시간이 없어 빈 공간에
반사된 내 얼굴 딸깍
이렇게 다시 잠가
그럼 조만간 또 시작하겠지
오늘의 찰칵
혼자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밤엔
내 이름이 지어진 꿈이
선물한 곤한 잠과
열매를 거둔 눈물이 부른 포만감
살짝 웃으며 교차해 또 만감
하루의 날 땀의 씨 실들이
만드는 점점 더 두터워지는 옷 안감
밖은 아직 비가 와 엄마 아빠
난 누구에게 오늘 이 우산을 전할까
오늘도 열한 시 반 십분 전이면
귓가에 스치는 그 빛 바랜 종이 넘김
그 우산 펴지는 소리 밝은 소금
별빛 아래 내 입술은 귀 아래서 멈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