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부가

정태춘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거친 베옷 입고 누우신 그 바람 모서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바람 거센 갯벌 위로 우뚝 솟은 그 꼭대기
인적 없는 민둥산에 외로워라 무덤 하나
지금은 차가운 바람만 스쳐갈 뿐
아, 향불 내음도 없을
갯벌 향해 뻗으신 손발 시리지 않게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모진 세파 속을 헤치다 이제 잠드신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길도 없는 언덕배기에 상포자락 휘날리며
요랑 소리 따라 가며 숨 가쁘던 그 언덕길
지금은 싸늘한 달빛만 내리비칠
아, 작은 비석도 없는
이승에서 못다하신 그 말씀 들으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지친 걸음 이제 여기 와
홀로 쉬시는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펄럭이는 만장너머 따라오던
조객들도 먼 길 가던 만가소리
이제 다시 생각할까
지금은 어디서 어둠만 내려올 뿐
아, 석상 하나도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 모습 기리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197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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