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뱅이굿(5)

김종조


김종조는 평양 용강 출신으로 배뱅이굿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하는 김관준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배뱅이굿을 배웠다고 전한다. 김종조는 아버지에게 배뱅이굿을 비롯하여 각종 소리를 배웠다 하는데, 일제때 서도소리로 이름을 떨치었고 최순경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서도소리 명창이기도 하다. 그의 소리를 담은 유성기음반에는 배뱅이굿을 비롯하여 수심가, 기성팔경, 초한가 등 수많은 소리가 담겨져 있다. 그의 배뱅이굿은 현재 이 빅터 음반에 취입된 것만 알려져 있다.
김종조가 빅터 음반에 취입한 배뱅이굿은 그의 아버지 김관준의 제로 보이나 김종조가 스스로 조금 변조시킨 것 같다. 우선 초앞 아니리에서 약간 신파조 대사 연기가 보이는데, 당시에 일부 판소리 명창들이 판소리 아니리에 신파조 대사 연기법을 약간 구사하여 음반에 취입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당시에 일시 유행하던 시류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종조의 배뱅이굿은 유성기음반 4장 8면에 담겨 있다. 배뱅이굿을 간략하게 줄여서 담았지만, 최순경.김주호의 배뱅이굿이 3장이나 2장으로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일제 때 음반으로는 가장 많이 담은 것이라 하겠다.
<제5~8면> 제5면부터 8면까지는 평안 건달의 굿사설이다. 굿소리는 공수조와 중몰이 장단의 산염불조이다. 이 음반은 최순경과 더불어 서도소리 명창으로 꼽히던 김종조의 배뱅이굿으로 그의 유일한 배뱅이굿 자료로 보인다. 서도소리로 일관하는 최순경의 배뱅이굿에 견주어 남도소리 조를 능히 구사하는 김종조의 특이한 일면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원반 : Victor KJ-1259-A
녹음 : 1938. 3. 18

(아니리)
뒤로 돌아가니 무당들 뫼여서 굿하느라고, 굿하는 격식을 아나,해를 보았나.
“지나가던 박수 만신도 ○○거리 따사 한 거리 놀고 가면 어떠냐?”
“애개개 망측해라. 난 여자 무당도 못놀아 박사 무당이 뭘 다 들어.”
왜 ○○○ 한가리 못 얻어 놀게 되어 있지. 짓헌구 한단 말만 들었지, 하는 것 보기를 했나, 해를 보았나? 지랄보리듯 더품 아니 물더니 사지를 와르르르르 떨더니,
“에헤, 괘씸하구나. <어드른 소든마큼 내기들> 번개불에 담배 붙이고, 하누님 알아 턱걸이 하고, 땅을 주르잡아 축지법하고, 만일에 한 거리 한 해 넣줬다는 직사 박사 <호박사 인문사 다람사 ○○ ○○○ 갈태짓 차구 자빠지리라. 시퍼랗게 죽어지니, 얘 거무당이 승소하군 대구나 한거리 놀래주자.>

(창 : 중몰이 산염불조)
“반갑구나 반갑구나, 고향산천이 반갑구나.”
에헤헤 아미타야 염불이라.
“산천초목도 날 반기건만 우리 부모는 어디매를 가고 날 찾아 반겨줄 줄 왜 모르나.”
아, 에헤헤에 아미타야 염불이라.

(아니리)
이때에 함경도 네편네가 일리 와 살던 모양이(었다). 후더덕 기어 들어가더니,
“아이고 이로 보송, 성.”
“왜 그러오?”
“아이고 삼년 석 달 열 사흘을 굿을 할라커든 무스그 왔다 왔다 없어요. 어이 되어 왔다 왔다. 나와 보지 앙이케니?”
“뭐 왔다 가서?”
“무스그 왔다 왔다 하는지 내가 아이? 나가 봐야 알제.”
나와 섰으니 심상한 새 소리만 들어도 울던 모양이라.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섰는데, 잘 썼던지 못 썼던지 기성강산에 눈 부치구서 오입쟁이라. 찰색은 썩 잘하던 모양이었다. 자 그러면 우리 오마니라는 양반한테는 마수를 바짝 갈아보는 수밖엔 없다.

(창 : 중몰이 산염불조)
“에히 공수래는 공수거를, 왔으니 완 흔적을 누 그리 알며, 가느니 간 흔적 뉘가 알까?”
아, 에헤헤 아미타야 염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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