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차도 없는 주제에 이렇게 읊기 시작했습니다

돈춘호와 가당찮
힘없이 내 방을 울리는 시계
바늘이 미처 절반을
남기지 않은 출발시간
삽시간에 이 밤 내 방은 좁아지니
이봐 내 입 안에 담배를 물려줘
이젠 가야 해
결국 언젠가 나에게로 찾아올
시간이 간신히 도착했으니
마침 해 지는 지구의 한쪽 끝에서
마침내 지르는
지루한 일상의 탈출
자 그런 말장난은 거둬
팔짱만 끼지 말고 말짱한
옷가지라도 입지 그래
이 땅덩어리 끝까지라도
갈 맘이거든 어서 일어나 거들어
서 있지만 말고
적절히 달콤한 알코올과
갈 곳을 몰라 하는 때
지나간 잡지들과 시디들도 가방
한 켠에 자릴 펴네
편해진 맘으로 문을 여네
문을 닫네 차의 시동은 걸렸으니
시 또한 쉽던 도시도
시덥잖은 라디오 방송 속의
어설픈 사연 소개들과
흔들거리며 달려나가네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숨겨놓은 검은 빛깔을 내뿜고
품고 있던 색을 잃은 이 도시에
새 그림을 그리듯
빛은 어느새 거리를 덧칠해가고
이 거리에 드리운 가로등 불빛이
미처 미치지 않을 곳은 없다며
안심하듯 바삐 또 숨 가삐
각기 갈 길을 찾는 발걸음은
경쾌한 춤사위 같지
쉴 새 없이 달리는 바퀴들은
돌고 돌아 어디론가
바쁘게 굴러가며
차의 경적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이봐

이대로인 채로 이 도로를
달려도 되는 걸까
허 모두 바쁜 발길을 향하는
저 곳으로 우리도 서둘러 가야지
그 여지가 없는 질주의 이유에
행여 지향점이 없을까
문득 걱정돼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해
발길을 옮기지 못할 바에야
일단은 달려가 보겠어
애써 방향을 찾는다 해서
변하는 건 없겠지
어차피 정해진 길을
따라갈 뿐이지
끊임없이 흘러가는
저들의 행렬에
뒤쳐질 수 없어
키를 꽂아
맘을 닫네 차의 시동은 공허히
다시 또 도시의
시체 같은 창백함에
시치미 떼듯 시침이 한 바퀴를
돌 때까지 둔탁한
지겨운 회전을 하네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풍기던 환한 빛깔을 감추고
물감으로 색칠을 하듯
어느새 칠흑 같은 저 어둠을 실어
나를 채비로 분주해져가고
이 거리에 드리워진 더러움들이
들이닥치지 않은 곳은
어디도 없으니
수치스레 설친 낯이 익은 그림자
술 취한 듯 추는 추한 춤은
추문처럼 번져
쉴 새 없이 달리는 바퀴들은
변함없이 더욱 더
거세게 굴러가며
앞을 다투어가며 퉁겨내는
길바닥과의 마찰 소리가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칠흑 같은 물감이 색칠한 저
어둠이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경쾌한 듯 또 취한 듯 흔들린
발걸음이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달리는 바퀴의 어지러운 흔적이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거기에 몸을 실은 우리도 거리를
가득히 메워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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