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밤

양양
그 사람 여느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산책을 시작했지
여름밤의 일이었어.
그 밤엔 언제나처럼 동행이 없었지만
그 편이 나을 거라 버릇처럼 말해왔지
어떤 순간에 그 사람
단어 하나를 찾지 못하여 아연했고
어떤 순간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말을 걸어와
시인은 일없이 바빴지

만일 나를 시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만일 그댈 시인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밤은 어떨까

귀를 기울이는 것과
아주 작은 걸 보는 게
그 사람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
달과 별과 전봇대와도 인사를 나누고
저 창문 속 불빛들의 이야기를 들었지
내일의 걱정보다는 여기의 벌레소리가
더 크게 다가와서 안심했지

만일 나를 시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만일 그댈 시인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보게 될까
그 사람은 조금 쓸쓸하였을까
무얼 찾고 있을까
만약 우릴 시인이라고 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지

시인의 밤이 깊어가네
우리의 밤이 깊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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