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시인: 서정주)

고은정
♥  학  ~^*

-서정주   시

천 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은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난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에 맞부딪노나.

산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서니. 보라. 옥빛. 꼭두서니.
누이의 수들을 보듯. 세상을 보자.

누이의 어깨 넘어 누이의 수틀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을 보자

울음은 해일. 아니면. 크나큰 제사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죽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 땐들 골라 못 추랴.

긴 머리. 잦은 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 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저승길을 난다.

♠서정주 (徐廷柱)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중앙불교전문학원 졸업.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동인지<시인부락>을 주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화사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서정주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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