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다 보면 걷고 싶고
걷다 보면 쉬고 싶다 그러면 쉰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그러면 눕는다
원 밖에 서면 원 안이
원 안에 서면 원 밖이 좋아 보인다
산에 가면 바다가 그립고
바다에 가면 또 산이 그립다
나란 사람이 원래 그렇다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너는 꿈을 이루기엔
정열이 부족해
친구들이 말한다
너는 부자 되기엔 계산이 부족해
마음속에 정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용기가 부족해
망설임과 후회로 얼룩진
몽롱한 인생 살아온 것도 인정해
누굴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네
다만 몸이 이 모양이 되고부턴
건강한 동력이란 걸 한 번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게
너무 속상해
자꾸 내 안의 새들이
날아오르자 조른다 퍼덕거린다
자꾸 내 안의 물고기들이
헤엄치자 조른다 팔딱거린다
그래 나도 한 번 켜진 이 마음의
불을 꺼트리고 싶진 않다
서랍 속 습기에 젖은 폭죽을 꺼내
하늘로 쏘아 올리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그 정도의 자격은 있는 것이다
때론 내 안의 사자가
호랑이가 서두른다
때론 내 안의 아이가
소녀가 주저앉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탈옥을 꿈꾸는 죄수가
숟가락으로 벽을 뚫어내듯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긴 호흡으로 뒤돌아 보는 일 없이
태양을 향해 그냥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