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의 반지하 단칸방에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을 관찰해
그는 커다란 교복을 입고
거울을 봐
매일 조금씩 올라오는 여드름과
벌이는 작은 전투는
꽤나 치열해
하얀 씨앗을 짜내는
그 희열에 중독돼
하지만 희생도 필요해
결국 콧등에
큰 붉은 꽃을 피웠네
수많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끔찍한 망상에 몰입하게 돼
때마침 어머니가 등짝을 때렸지
메두사의 저주에서 소년을 깨웠지
거울을 벗어나게 만든 사랑의 매
도시락을 챙기고 책가방을 매
어머니께 인사하고 나선 등교길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승격해
누군가의 곁에서
아마 너의 곁에서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흐르는 Melody
잠시 잊혀져가도
언젠간 다시 찾겠지
Let’s feel together now
Go 1993
93년의 한 구멍가게의 주인은
방금 들어온 아이를 주목하네
지저분해 보이는
행색을 한 녀석은
가게의 곳곳을 마구 돌아다녔어
나이는 아마도
여덟살 남짓돼 보이는군
여러 과자들을 만질 때
혹시나 상품이 더러워지진 않을까
행동 하나하나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 녀석은 두리번 거리며
슬쩍 블랙죠 쵸코바를
주머니로 숨겨
그 모든 행동을
볼록한 거울로 지켜본 주인은
그 녀석을 불러
크게 꾸짖어
눈물이 쏙 빠지도록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꼭 받아낸 후
다시 돌려주는 쵸코바
너의 눈물이 마를 때쯤 먹어봐
누군가의 곁에서
아마 너의 곁에서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흐르는 Melody
잠시 잊혀져가도
언젠간 다시 찾겠지
Let’s feel together now
Go 1993
93년의 한 전자 오락실
누군가 어떤 분야의 정점에 올랐지
훌륭함을 몰라보는
역사책이 숨긴
장발의 남자
27세 무직
모든 격투게임의 최고수로 군림해
존경을 받으며 명인이라 불리네
게임챔프 게임월드 등의
게임잡지 인터뷰도 거절해
역시 대인답지
용호의 권 2
슈퍼 스트릿 화이터 투
동네 꼬마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그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춘추전국시대 자칭 고수는 많아져
그 남자는 3개월 후 돌아왔어
양복에 단정한 머리
아무도 몰라봤어
게임을 하자마자
꼬마에게 삼연패
그의 패배는 위대하고 완벽해
내가 너를 모르지만
너는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혹시 만나게 된다면
함께 미소 지으며 걸어가자
누군가의 곁에서
아마 너의 곁에서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흐르는 Melody
잠시 잊혀져가도
언젠간 다시 찾겠지
Let’s feel together now
Go 1993
잠시 잊혀져가도
언젠간 다시 찾겠지
Let’s feel together now
Go 1993
잠시 잊혀져가도
언젠간 다시 찾겠지
Let’s feel together now
Go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