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정태춘, 박은옥
새벽 이슬 맞고 떠나와서 어스름 저녁에
산길 돌고 별빛 속에 묻혀 잠이 들다 저승처럼
먼 길에 꿈을 꾸고 첫 새벽 추위에
잠이 깨어 흰 안개 속에서 눈 부빈다 물
도랑 건너다 손 담그고 보리밭 둑에서
앉았다가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을 돌며 먹구름
잔치에 깜짝 놀라 먼길을 서둘러 떠나야지 소낙비
맞으며 또 가야지 산 아래 마을엔
해가 지고 저녁 짓는 연기 들을 덮네 멀리
딴 동네 개가 짖고 아이들 빈 들에
공을 치네 어미마다 제 아이 불러가고 내가
그 빈 들에 홀로 섰네 낮에 들판에서
불던 바람 이제는 차가운 달이 됐네 한낮에
애들이 놀던 풀길 풀잎이 이슬을 먹고
있네 이제는 그 길을 내가 가네 나도
애들처럼 밟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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