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보리밭 사잇길을 따라 보살이 가는 분녀의 어깨위에 안개가 내린다
안개 속에 마을은 지워지고 배웅 나왔던 사람들의 모습도 지워지고
숨어서 우시는 시어머니의 눈물도 이제는 모두 지워지는데 풀잎을 밟고 가는 눈녀의
발길마다 전 남편 칠성이의 속삮임이 젖는다
분녀야 분녀야 어서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어차피 잊어야 할 꿈이라면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아
온통 이슬뿐인 가슴으로 종소리가 날아와 박혀 메아리처럼 퍼진다
종소리 끝에서 별들은 떨어지고 텅 빈 하늘에 남겨진 나머지 별들도 빛을 잊어버린
그 해 여름에 장으로 팔려가는 암소처럼 보살이 가는 분녀의 어깨위에 안개가 내린다
분녀야 분녀야 어서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거라
그리움을 안개 속에 뭍어 버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이른 아침 보리밭 사잇길을 따라 보살이 가는 분녀의 어깨위에 안개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