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정우 (04)
그대 밤을 달리는 짐승
달아나는 지친 발걸음
긴 잠을 부르는 들숨
소리 없이 스민 한기에
꿈에서 나는 목이 부러져
죽은 사슴이었다. 몇 대 안 되는
승용차와 트럭이 겨울바람 같은 속도로
도로를 내지르고,
건물 위 커다란 광고판엔
진통제 상표가 걸려있다.
새벽. 내 두 눈은 하얗게 말라간다.
‘그때 이사를 갔었어야 했는데, 하고
매번 후회했어.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혼자 두지 않았을 텐데.
병든 사람끼리 딱 붙어서
병을 더 키운 거야,
네 아빠 말을 들으면 되는 일이 없어.’
불행이 엎질러진 외갓집 나무 바닥.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의 미닫이문.
카펫. 냉장고. 말라가는 과일이
담긴 바구니. 내가 내게 일어난 재해를
똑똑히 바라본다. 나아질 일이 있을까.
나아질 마음은 있을까.
기회가 찾아온다면 행복해질
자신은 있을까. 새벽,
내 두 눈은 하얗게 말라간다.
몇 대 안 되는 승용차와 트럭이
삶과 같은 속도로 도로를
내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변함없는 이야길 찾아 온
사방을 뒤적이고 둘러봐도 빛이 없다
쌓인 눈을 나 밟아간다
어젯밤은 이 새벽보다
조금 더 나았던 것도 같지만
좋은 것들 내려둬서 자장자장 잘도 잔다
나 밤을 달리는 짐승
달아나는 지친 발걸음
긴 잠을 달래는 들숨
나란히 눕는 어느 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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