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짐승들 상좌 다툼 하는데

박양덕
아니리
"내가 아무리 못 생겼다 할지라도 만좌 중에 내 망신을 이다지도 시킨단 말이요" 그 때여 별주부 또 한편을 바라보니 그곳에서는 왼갖 길즘생들이 모여 상좌 다툼을 하는디

중모리
공부자 작춘추에 절필하던 기린이며 삼군삼영 거동시에 천자옥연 코끼리며 옥경선관승피허든 풍채좋은 사자로다. 서백이 위수사냥 할 제 비웅비표곰이로다. 창해 박랑사에 저격시황 저 다람쥐 강수동류원야성에 슬피 운다고 저 잔나비, 꾀 많은 여우 날랜 토끼 털 좋은 너구리며 암 곰숫 곰 멧돼지며 노루 사슴 승냥이 이러한 동물들이 앙금앙금 나려와서 상좌 다툼을 허는구나

아니리
"우리가 연년이 회취하고 노는 노름에 상좌 없이는 못 놀것다. 금년부터는 상좌를 정하고 노는 것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고 "저기 앉은 장도감은 언제 났오"

중모리
자네들 내 나를 들어보소 내 나를 셀짝시면 기경상천 이태백이 날과 둘이 동접하야 광산십년 글을 읽다 태백은 인재로서 옥경으로 승천하고 나는 미물 짐생이라 이리 천테 되었으나 태백과 연갑이 되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겠나 달파총 너구리가 나앉으며, 장도감도 내 아래요 달파총은 언제 낳소 나의 수재 들어보소 동작대 지은 집에 좌편 청룡각이요 우편은 금봉루라 이교의 뜻을 두고 조자건이 글을 지어 동작대 풍운허든 조맹덕의 연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겠나

아니리
토끼가 깡충 뛰어 나앉더니마는

중중모리
자네들 내 말을 들어보소 자네들 내 말을 들어봐 한광무 시절에 간의대부를 마다하고 풍운으로 차일 삼고 동강의 칠리탄 낚시 줄을 담가놓고 고기 낚기 힘써 허든 엄자릉이 시조 허든 날과 둘이 동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 하겠나

아니리
멧돼지란 놈이 끄실한 눈썹을 꿈쩍꿈쩍 하고 나앉더니마는

중모리
나의 연세를 들어보소 한나라 사람으로 흉노국에 사신갔다 충의충절 십구년을 수발이 진백하야 고국산천 험한 길로 허유허유 돌아오던 소중랑의 연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 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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