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지에 황혼이 붉게 물들어 오면
여행자의 향수도 어디서 찾아든다
술렁대는 가을 바람에 잎새 떨구는 나무 아래
옷깃 여미고 홀로 섰는 이 사람은 누구냐
은행 나무 찬 바람에 그 잎새 흩어지고
가로등 뿌연 불빛 초저녁 하늘에 뿌리면
거리마다 바쁜 걸음 스쳐가는 사람 사이
처진 어깨에 발길 무거운 이 사람은 누구냐
땅거미 지고 어둔 변두리 가파른 언덕길로
어느 취객의 노랫소리 숨차게 들려오면
길 가 흩어진 휴지처럼 풀어진 가슴을 안고
그 언덕길 올라가는 이 사람은 누구냐
깊은 밤 하늘 위론 별빛만 칼날처럼 빛나고
언덕 너머 목 쉰 바람만 빈 골목길을 달리는데
창호지 문살 한 귀퉁이 뿌연 등불을 밝히고
거울 보며 일기 쓰는 이 사람은 누구냐
(1978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