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김민기

기지촌

서산 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텐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 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뵈지 않네

가로등 아래 장님의 노래는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고
자동차 소리 개 짖는 소리에 뒤섞여 흩어지네
시계소리 내 귓전을 스치더니만 창 밖으로 새어나가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네

밤거리에는 낯선 사람들 떠들면서 지나가고
짙은 화장의 젊은 여인네들이 길가에 서성대네
작은 별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하늘 끝으로 달아나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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