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빨갛던 아침노을
붉은빛이 새어나온 틈새로
나와 함께 도망가자
고 말했던 너는 어디에 있나
떠오르는 색깔들의 합연산은
새까맣게 가라앉아
다시 돌아온 해질녘의
닿을 수가 없는
한때는 사랑했던 세상을 증오해
벽에 피어난 곰팡이
깜박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내일 같은 건 없다고
팔목에 새겨진 숫자를 보던
어느 날의 너와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마주친 그때의
아름답던 도시는 이제 없다고
쌓여 잇는 먼지들과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
구석에 놓인 인형에
말을 걸어 봐도 대답은 없어
익숙한 노랫소리를 따라
걸어 봐도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너와의 추억들도
언젠가는 완전히 잊혀진다는 아픔도
시간 속에 무뎌져 가
이제야 떠오른 그때의 환상
어딘가에 숨겨 왔던
과거의 이야기도 빼앗기는
이곳에서 우린 함께 살아갔다
잘려 버린 마음으로
너를 보내던 그날의
하늘의 색조차도
하얀 천장으로 덮여 볼 수 없었다
잠에 들어 꿈을 꾼다
하루의 끝에서 거짓을 보아
찢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외로움을 잊는 약을 삼키고는
파란 화면을 바라본다
이어지는 매일 속에
생각은 흐릿해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다
벗겨진 하얀 페인트
사이로 보이는 콘크리트
죽어 가는 뒤집힌 벌레는
날개를 파닥이고 있다
언젠가의 너처럼
이름마저 잊어버린
나는 무엇도 할 수 없다
굳어 있는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
무엇이라도 느껴지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