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눈으로
뭔가를 잡아내
뭘 보든 비꽈서 꼴아 봐 나한테
다가왔던 것들 피가 날 정도로
내 직업의 핵심은
그걸 삼켜 전부
내 오감 또 의식이 닿는다면
그곳이 어디건
온갖 건 생명을
부여 받고 지껄이며
호흡하지 모두가
눈을 감았다 하는 것들도
사실 숨을 헐떡였지
난 그 존재감을 느껴
그 두꺼운 밀도는
내 짧은 역사를 물들일 수 있어
색이 입혀진 내 몽상은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지
그 태풍의 눈 속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것의 고향
해와 가로등
빛이 내리치는 공방
내 아틀리에는 지붕이 높아
장치의 일부가 되지
드러운 비둘기조차
펜은 필요 없어 다 갖다 버려
손가락을 꺾어 분질러서 적어
난 이 도시의 심장
단어는 혈류처럼
곳곳에 날 실어 나르지
거리엔 내가 넘쳐
깊게 호흡해 더 깊게 닿도록
짙게 칠할수록 더 쉽게 낯설어져
처음 본 것들로
내 머릴 가득히 채워 넣고
다시 날 비워낼 때까지
전부 다 털어
한 바퀴 돌려
나는 세계 세계는 나
영감이라 불린 것들은
전부 내게서 받아
그거 야하게
손짓하면서 날 봤던 거
내 머리 속에다
데려와 다 벗겼지
피와 숨 또 생각은 전부 하나지
내게 쌀밥을 줘
그럼 이 세곈 무한하니
언제나 암스트롱 같은 발자국
난 낙원의 첫 번째 손님
혀가 긴 뱀들의
낄 자리는 절대 없지
밀랍인장 같은
입술을 떼는 순간
쪼개졌었던 세계는 하나 돼
분주하게 주고 받지
내 굳은 살 박힌 혀로
표현했던 공간은
때 묻은 가사 공책을 뜻해
또는 그걸 뺀 전부이기도 하지
그 위에 연필을 꼽자
더 뿌리깊어가지
삶은 씨앗 그 자체고
세상은 땅과 같지
난 최초의 펜을 쥔 듯이
적어 한 글자씩
썩을 수도 없는 몸이 돼
땅 속에 묻힌 다음
몇 년이 지나
그 속을 누군가 파헤친다면
난 장담할 수 있어
거기에는 내 흰 뼈는 없고
검은 글자들만 있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