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앞을 못 보는 심학규라는 양반이 살았어. 옛날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봉사라고 불렀어.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심 봉사라고 불렀지.
심 봉사는 무척 가난했는데, 젖도 못 뗀 어린 딸까지 있었단다. 게다가 심 봉사의 아내는 딸을 낳은 뒤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어. 심 봉사는 앞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 혼자서 갓난아기를 키워야 했어.
“어휴, 심 봉사 불쌍해서 어쩐대요. 갓난아기만 남았으니.”
“아기가 더 불쌍하지 뭐예요. 분명 딸이었는데… 이름이 청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이 심 봉사와 청이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심 봉사의 목소리가 들렸어.
“우리 청이 젖 좀 물려주세요. 우리 청이 젖 좀 물려주세요!”
“어이쿠, 저기 심 봉사가 아기를 데려왔네.”
“심 봉사, 이쪽이에요. 마침 우리 아기는 자고 있으니 내가 젖 좀 물릴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심 봉사는 배고파 우는 청이를 업고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 더듬더듬 젖동냥을 다니며 정성껏 청이를 키웠어. 다행히도 청이는 무럭무럭 자랐단다.
청이는 착하고 손재주도 좋아서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늘 칭찬을 받았어.
“아버지, 저도 열다섯 살이 되었으니 아버지는 집에 편히 계세요.”
“청아, 네가 못난 아비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전 아버지가 곁에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청이는 늙은 심 봉사 대신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어.
“아버지, 대감님 댁에 가서 바느질감을 받아 올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오너라.”
청이는 하루도 쉬지 않았어. 늘 마을 일을 돕고 삯바느질을 하며 아버지를 모셨단다.
하루는 청이가 늦게까지 남의 집 일을 돕고 있었어.
“우리 청이가 많이 늦나 보네.”
심 봉사는 지팡이를 짚어가며 더듬더듬 청이 마중을 나갔어. 그런데 다리를 건너다 그만 개울에 풍덩 빠지고 만 거야. 다행히 지나던 스님 한 분이 구해 주셨지.
“쯧쯧,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면 눈을 뜰 수 있을 텐데…….”
스님의 말에 심 봉사는 귀가 번쩍 띄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