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르르 다시 주르르
비 오는 어느 화요일
안개 낀 하늘 어두운
이 거리를 나는 걸어요
한 방울 다시 한 방울
얼굴 아는 사람 없이
자박자박 물그림자
번져 가는 열두 시
흐려진 저 쇼윈도와
가게 안의 바쁜 사람들
얼룩져 짜증 난 얼굴
하나같이 웃질 않네요
비뚤게 쓴 채인 우산
양말 없이 신은 장화
뛰어가는 그 뒷모습
멀어 가는 이 오후
들어 주는 이 하나 없는 길거리 공연
박자를 세듯 쏟아지는 빗물 소리에
들여다봐도 전원 꺼진
까만 화면처럼
무채색 미니어처
비를 피해 달린 낮
거리에 서서 못 박힌 가로등
저 불빛처럼 눈 감은 이 오후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도망쳐 가요
이름없는 순간이 아까워서
뒤돌아 봐도 이미 늦었어요
손에 든 우산 머리 위로 던져 버리고
이제 멈춰 서 봐요
올려본 구름 보라색
헐렁한 일회용 우비
골목길 전봇대 아래
나 혼자서 걸터앉아서
투명한 비닐 덮개와
야옹대는 종이 상자
한 발짝 다가오는
이없어 슬픈 열두 시
안아 주는 팔 하나 없는 세상 한구석
박자를 세며 쏟아지는 빗물 소리가
예고도 없이 찾아왔던 불청객처럼
떠나야 할 순간도 정해진 게 아니죠
언젠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겠죠
저마다 그런 추억들을
가지고 걸어나가요
이름없는 순간을 쌓아 올려
오늘이란 계단을 밟아 가요
가까운 미래 그리워질 거에요
그러니 잠깐 멈춰 서 봐요
거리에 서서 못 박힌 가로등
저 불빛처럼 눈 감은 이 오후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도망쳐 가요
이름없는 순간이 아까워서
뒤돌아 봐도 이미 늦었어요
손에 든 우산 머리 위로 던져 버리고
멈춰서서
알아요 이렇게 말해도
당신에게 도착하지 않을 걸
이제는 어떤 이야기도
내게 의미 없단 것도
매 순간 걸어가는 이 거리에
내리는 무수한 빗방울조차
손 뻗어 닿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여기에 맨발로 서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