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속 까만 글씨들에
제 것이 아닌 시들해져 가는
관념들 대신에 날것을 채워
박자에 맞춰가며 되씹네
뒷바닥부터 덮어가는 단어는
어설펐던 내 과거의 목적 없는
펜의 흐름을 다듬어 펴네
불운을 거쳐 네 번의 봄에 걸쳐
싹을 틔운 글씨의 씨앗은 점차
네모난 2차원을 벗어나
오선의 종이에 당당히 서가
허구한 날 피아노 학원을 또
피하러 틀어박힌 방구석엔
틀에 박힌 악보 대신
날 신나 다시 날뛰게 만든
조그맣던 입 하나로
불어댔던 휘파람
그 시퍼런 선율이
머릿속을 채우니
차라리 체르닐 몇 번 더 치느니
공책 깊숙이 휘파람을 옮겼지
온전히 나의 소릴 담을 수 있다면
꽉 다문 입술을 열리
그렇게 쌓인 나 자신의 소리에
당신의 손이 닿는다면
귀를 기울여줘 여기 어우러져
한 소리를 이뤄
한창 부풀어가던 당찬 가사들은
곧 한참을 기다리다
막차를 놓치고
허나 갑작스레 던지는 가당찮은
그의 제안에 난 박차를 가해
다시 공책을 집어 펴고
상심에 상심을 곱해간 일곱 해 전
내 폐 속도 부패한 냄새로
가득 찬 곳에서 만난
어느 검은 놈 조금은 겁을
먹었지만 놈의 목소린
날카로운 검을 머금었기에
그 어깨에 실린 무겐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었지
그리해 그 수많은 술잔들을
가슴 안에 숫제 채워 손을 잡은
여기 가당찮 돈춘호
곧 죽어도 습기 찬 골방에서
곰팡이나 벗 삼아
가사나 쓰며 살아가
돌아가는 세상일을 거슬러
가슴에 찬 것을 더욱 더 긁어내
낡은 공책에 그려낼 터
내 못난 글씨의 씨앗을
네 박자에 담아 뿌려낼 터
가슴에 찬 곰팡이를 긁어내어
냅다 뱉어
휘파람을 따라가며 자라난
내 생각이 여기 다다랐어
뭐 비록 잡스러운 생각이 나
값으로는 매기지 못하는
많은 단어가 되었어
난 더 나아가 보겠어
떠나가 보겠어 빈 공책을
가득 채운 시커먼 탄소는
산화가 되어 언어로 다시 태어나
시들어가는 지그시 물어 다문
찬 입술 속으로 들어차
들이찬 언어는 이내 팽팽히
부풀고 그 표면엔 깊은 골이
파여 폭발해 그 파편이 앞을
가리니 나 차마 못내 내뱉지 못해
참아온 말들을 이곳에서 외치마
말과 박자 내 고민과 팔자
휘파람에 모두 실어
힙합 안에 담아
비록 최초는 양초처럼
미약하나마
불길로 다잡아
오직 이 길로 나간다
그토록 오랜 시간 뱉어낸
가당찮의 당찬 휘파람
비로소 꽃을 피워
밤새 추려냈던 돈춘호의
모든 음소가 네 마음속 안을
불길로 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