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느러미 달고
바닷 속을 떠돌아다니며
물고기들 손 끝으로
만지다 놓아주던
여름이 있었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떠올리지 않은 채
한쪽 끝과 한쪽 끝에
가난한 집 한 채가 놓인 길 위를
맨발로 걷기만 하던
여름이 있었고
소낙비를 맞아
뚝뚝 물이 떨어지는 옷을 입고
맑은 하늘이 다 말려줄 때까지
강 건너는 물소를
쳐다보며 앉아 있던
여름이 있었고
젖은 나뭇잎들 끌어 모아
한 잔 찻물을 끓이기 위해
한나절을 불 지피던
여름이 있었다
10월도 여름이었고
10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고
11월도 여름이었고
12월도 여름이었으나
12월도 여름
여름 여름
이었으나 눈 뜨면 봄이었고
그늘 아래 가을
꿈 속은 겨울이었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