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

뻐지

오늘은 별 웃기지도 않은 말들로 떠드는 게 힘이 들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댔어 내가 들어도 웃을 만한
그 시끄럽던 술자리를 빠져나오니까
어느새 혼자인 게 익숙한데 한참 그렇게 걷다 보니까 여기가 어딘지

멈춰서 뒤돌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집은 저쪽이었는데
버스든 택시든 잘 가라 다 보내버리고 내 발자국도 보내고

잘 가라 만원버스야 자리가 없어 못 탄 건아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난 울음 터질 것만 같은데
전화 올 때가 됐는데 5분이라도 좋아

아까는 비가 왔었나 봐 가로등불은 촉촉하고 밝게 비추는데
내 발 밑에도 켜져 있는 불빛들
살랑거리네

둘이서 언제쯤 이 긴 밤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애써 뛰어 봐도 시간은 여전히 걸어가는데

걷고 뛰고 걷고 어느새 언덕을 넘고 익숙한 건물들 새로
고요한 고시원의 좁은 새벽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네
그래 난 너무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 하고 있어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 하고 있는 중이야

TV도 라디오 소리도 스탠드 불빛도
이 고요함은 뚫진 못해
양치는 해야지 칫솔은 드니까 그렇지
치약을 안 샀었어

잘 가라 만원버스야
자리가 없어 못 탄 건 아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난 울음 터질 것만 같은데
어서 와 이른 첫차야
자리가 없어도 난 탈 거야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금방 이러다 말겠지 뭐
전화 올 땐 지났는데 안녕 아침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걸었나 봐 사랑도 우정도 다 잊고 떠났나 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걸었나 봐 길이 지나가는지 내가 걷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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