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시인: 조병화)

정희선

♣ 샘  터

- 조병화  시

빨간 태양을 가슴에 안고
사나이들의 잠이 길어진 아침에
샘터로 나오는 여인네들은 젖이 불었다.

새파란 해협이 항시 귀에 젖는데

마을 여인네들은 물이 그리워
이른 아침이 되면
밤새 불은 유방에 빨간 태양을 안고
잎새들이 목욕한 물터로 나온다.

샘은 사랑하던 시절의 어머니의 고향
일그러진 항아리를 들고
마을 아가씨들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따르면
나의 가슴에도 빨간 해가 솟는다.

물터에는 말이 없다. 물터에 모인 여인들의 피부엔
맑은 비늘이 돋친다.

나도 어머니의 고향이 그리워
희어서 외로운 손을 샘 속에 담그어 본다.

해협에 빨간 태양이 뜨면 잠이 길어진 사나이들을 두고
마을 여인네들은 샘터로 나온다.

밤새 불은 유방에 빨간 해가 물든다.
꿈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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