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시인: 김춘수)

유강진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김 춘 수   시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上空)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 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음악(音樂)에도 없고 세계지도(世界地圖)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漢江)의 모래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惡魔)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 세살은 잡히는 것 하낱도 없는
두 손을 허공(虛空)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네가 한 행동(行動)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漢江)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도
동포(同胞)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記憶)의 분(憤)한 강(江)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同胞)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英雄)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抗爭)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銃)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人類)의 양심(良心)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弱)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前)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지금,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樹木)들에서보다
치욕(恥辱)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人間)의 비굴(卑屈) 속에 생생한 이마아지로 움트며 위협(威脅)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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