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정태춘


제 꼬리를 물려고 뱅글뱅글 도는
고양이처럼
제 그림자를 밟으려고 뛰는 아이처럼
우리도 언제까지나 맑은 마음으로
육신의 어둡고 긴 충동을 희롱할 순
없을까

웃는 얼굴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추악한 얼굴처럼
밝은 한쪽과 그 뒤의 길다란
그림자처럼
자신과 또 그 내부의 자신과의
싸움에서
최고의 선을 향한 우리는
항상 승리할 수 없을까

어린 학생의 잘못에 조금치도 용서없는
어느 선생님처럼
타인의 실수엔 절대 관용도 없는
소인배처럼
제 일에만은 인자하고 관대하던 우리들
자신의 과오에도 언제나 그렇게
엄격할 순 없을까

부딪쳐 오는 파도처럼
몰아쳐 오는 바람처럼
유혹과 시련은 끝이 없고
그 길가에 내가 섰는데
제 어미의 젖을 배불리 먹고 잠든
저 어린애처럼
저 산모퉁이 무덤 속의 영혼 없는
육신들처럼
우리가 모두가 허기진 짐승인 양 집착하던
그릇된 애착과 욕망으로부터
초연할 순 없을까

비가 오거나 눈 오나 행상 푸르른
소나무처럼
인적 있거나 없거나 항상 열려진
저 숲속 길처럼
우리도 어느 땐가는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작고 하찮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달관할 수 없을까

(19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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